성산두 < 산동성 < 중국안내 < 행사안내 < HOME
공묘 기본정보 갤러리
위해항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각자 여권 을 먼저 준비 하고 올라가는 것이 유리 합니다
산동지방은 바다와 어우러져 있는 녹음이 짙은 땅이다. 동쪽으로 뻗어 나온 커다란 산동반도를 사이에 두고 바다는 발해만과 황해로 나뉜다. 서쪽지방의 내륙부를 키운 진시황은 바다를 신기하게 여긴 탓인지 천하를 통일하고 세 번이나 산동을 방문했다. 진시황은 기원전 219년에 지부산과 낭야산에 와서 진의 덕망을 칭송하는 비석을 세웠고 다음해에도 지부와 낭야를 두루 돌아보았다. 진시황은 재위 37년(기원전 210년)에 죽었는데 그의 마지막 여행지가 산동이었다.

산동성의 명승지 중 가장 유명한 곳이 곡부(曲阜)의 삼공(三孔)과 태산이다. 삼공이란 공묘(공자를 모신 묘)와 공부(공자의 집) 그리고 공림(공자 가족의 묘)를 가리킨다. 공자라고 하면 먼저 논어를 떠올리는데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이나 일본을 비롯해 유교의 영향을 받은 모든 지역에서 공자는 교양의 원천이다. 해외의 화교들도 자주 공묘를 찾아오는데 이들에게는 이곳이 마음의 고향같은 곳이다.

우선 공묘에는 엄숙하고 중후한 분위기가 감돈다. 공자 사후 1년 뒤에 노나라 哀公이 묘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규모가 작았지만 전한시대에 유교가 국교가 된 후 제왕이 점차 규모를 확대했다. 현재 공묘의 건물 대부분은 명청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공묘의 본전이라 할 수 있는 건물은 대성전이다. 1103년에 창건되었고 1499년(명의 홍치 12년)에 보수하면서 기둥에 용을 새겨놓았는데 아주 아름답다. 공묘 안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석이 서있는데 그 중에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문화혁명 중 북경에서 온 홍위병이 넘어뜨린 것을 시멘트로 붙여 놓은 것이라고 한다.

공부는 공묘의 동쪽에 있는데 공자의 자손들이 살았던 저택이다. 전한의 원제 시대에 공자의 13대 후손 공패(孔覇)가 관내후로 봉해지면서 식읍 800호, 황금 200근과 함께 황제에게 받은 집터가 점차 넓어져서 지금의 공부가 되었다.




copyright